"믿을 사람은 나를 잡은 형사밖에 없었다"
20대 고아, 절도죄 실형 살고 출소 직후 경찰서 찾아와 "도와달라"
By YonhapPublished : March 29, 2019 - 10:42
막막했다.
8개월을 생활한 교도소는 겨우 차비만 손에 쥐여 주고 이른 아침 A(24)씨를 다시 황량한 사회로 내보냈다.
지난해 여름에 수감됐을 당시 입은 반소매 옷을 다시 돌려받았지만, 바깥의 아침 공기와 바람은 아직 차갑고 매서웠다.
할 수 없이 교도소에서 제공한 얇은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고 터덜터덜 철문 밖을 나섰다.
먹고 잘 데가 없었다.
8개월을 생활한 교도소는 겨우 차비만 손에 쥐여 주고 이른 아침 A(24)씨를 다시 황량한 사회로 내보냈다.
지난해 여름에 수감됐을 당시 입은 반소매 옷을 다시 돌려받았지만, 바깥의 아침 공기와 바람은 아직 차갑고 매서웠다.
할 수 없이 교도소에서 제공한 얇은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고 터덜터덜 철문 밖을 나섰다.
먹고 잘 데가 없었다.
무작정 손에 쥔 돈을 모두 털어 차표를 사고, 전북 정읍에서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 26일 오전 10시께 그는 그렇게 광주 북부경찰서에 도착했다.
쭈뼛쭈뼛 주저주저, 형사과 사무실로 누군가를 찾아 들어가온 A씨를 강력팀 형사들이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라고 불러 세웠다.
"강력 5팀 이 형사님 안 계시나요?"
이 형사는 지난해 7월 교회에서 악기를 훔친 그를 붙잡은 강력팀 경찰이다.
의지할 곳 없던 A씨는 "출소하고 갈 곳 없으면 찾아오라"는 이 형사의 말 한마디를 믿고 자신을 잡은 형사를 찾아왔다.
A씨는 고아였다.
부모는 얼굴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보육원에 더는 머무를 수 없어 정착금을 받고 홀로서기를 했지만, 자리 잡기 쉽지 않았다.
정착금은 먹고 자느라 어느 순간 바닥났다.
갈 곳 없어 PC방을 전전하다 돈 없이 시설을 이용했다는 혐의인 사기죄로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지난해 7월에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들린 교회에서 돈이 떨어져 악기를 훔쳤다.
악기를 다른 교회에 헐값에 되팔았다가 덜미가 잡혀 8개월 동안 실형을 살았다.
교도소 안에서 마음을 다잡고 기술이라도 배워보려 했다.
그러나 '수감 기한이 짧아 기술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수감 초기 100㎏에 가까운 거구였던 A씨는 교도소 안에서 "건강 생각해서 살 빼라"는 이 형사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20㎏가량을 감량하며 다시 사회에 나갈 날만 꿈꿨다.
A씨는 결국 당직 근무를 서고 퇴근한 이 형사를 만날 수는 없었다.
"아침밥은 먹고 왔느냐"라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는 그에게 형사들은 5천원을 쥐여 주며 라면에 김밥을 먹고 오라고 했고, 점심도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먹게 돌아오라고 했다.
그는 5천원을 받아들고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됐다.
배고파서, 잘 곳 없어 또다시 범죄를 저질러 경찰서로 붙잡혀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걱정으로 커질 무렵인 저녁 시간, A씨는 지친 얼굴로 다시 경찰서로 문을 두드렸다.
A씨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고 이 형사는 잠자리를 박차고 경찰서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몰라보게 살을 빼고 돌아온 A씨를 "잘 왔다, 잘 왔어"라고 말하고 앉혀놓고 한참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형사들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마음잡고 살겠다"는 범죄자의 약속을 잘 믿지 않는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고, 다시 수갑을 차고 자신 앞에 앉은 이들을 수도 없이 봐온 탓이다.
그러나 이 형사는 자신의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도와달라"고 찾아온 A씨를 믿어보기로 했다.
형사과 직원과 동행해 임시로 거주할 곳을 찾아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는 A씨에게 이 형사는 "너가 잘 살아야 한다. 너는 우리 형사들의 희망이다"고 다독였다.
A씨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A씨를 노숙자 쉼터에 임시 입소시키고, 사회적 지원책을 유관기관 협조를 통해 알아볼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