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참사로 큰 고통을 받은 희생자 유족이나 화마와 사투를 벌인 소방관들이 악성 댓글로 또다시 씻지 못할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삽시간에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전해지면서 제천 참사 관련 보도는 며칠째 각종 포털사이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문제는 참사 관련 기사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유족과 소방관을 겨냥해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하는 악성 댓글들이 도배되면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제천 참사의 한 유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천 화재 기사마다 말도 안 되는 악플이 많아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개인이 '댓글 접기 요청'이나 '신고하기'를 해도 (악플이) 계속 생산돼 한계가 있다"며 "해당 기사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지 못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제천 희생자들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용어로 조롱하며 모독한 댓글을 처벌해달라"고 청원했다.
악성 댓글이 도를 넘어서자 네이버는 모든 기사 하단에 "피해자와 가족이 댓글로 상처받지 않도록 악플은 삼가달라"는 '제천 화재 사고 관련 댓글 협조 안내'를 게시했다.
실제 소방 당국의 늑장 대처를 비판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족 관련 기사에는 도를 넘어선 댓글이 달린다.
"와∼ 대단한 유족이네요∼이런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있다니"라거나 "애도하는 맘이 싹 달아난다. 유가족 갑질 장난 아니네", "무슨 일만 생기면 꼬투리 잡기 바쁘구먼. 동정심도 사라지네"라는 댓글이 대표적이다.
"무식한 ××들아 입이라고 함부로 늘리지 마라"는 등 욕설에 가까운 댓글들도 있다.
화마와 사투를 벌였던 소방관도 악성 댓글로부터 상처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한 누리꾼은 "소방관들 하루종일 족구하고, TV 보고 놀고 있더라. 소방차가 물이 안 나오는지 점검도 안 하느냐"며 근거 없는 비난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소방관 ××××", "물만 뿌리다가 질식사로 다 죽여놓고…", "사람을 구하지도 못하면서 쇼하러 출동했나", "화재 진압하러 가면서 소방복만 입으면 전문가냐" 등 원색적인 글들도 적지 않다.
이번 화재 사건을 세월호에 빗대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정치적인 세 대결 양상으로 몰고 가는 댓글들도 적지 않다.
보수성향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진보성향 네티즌들은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적폐'로 몰아가는 등 진영 간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제천 화재 사건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서 악성 댓글도 많은 것 같다"며 "악성 댓글은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주는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악성 댓글 대부분은 자신의 의견에 반한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라며 "이런 악성 댓글이 사회 통합을 해치고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만큼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악성 댓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댓글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