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한테 버림받은 대형 반려견들이 야생에 적응해 가축을 공격하거나 등산객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람의 손에서 벗어난 뒤 야생성과 공격성을 회복해 맹수화되고 있는 것이다.
떼를 지어 다니는 속성상 오히려 멧돼지보다 더 무서운 '야생의 폭군'이 될 수 있는 들개는 개체수가 갈수록 급속히 늘면서 새로운 '위해 동물'로 등장했다.
지난 22일 충북 옥천에서는 들개 3마리가 손모(75)씨의 한우농장을 습격해 10개월된 한우 1마리를 물어 죽이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희생된 소는 체중 250㎏에 육박할 만큼 몸집이 크다. 그러나 들개떼는 자신보다 덩치가 10배 이상 큰 소를 공격해 쓰러뜨린 뒤 숨통까지 끊었다. 엉덩이와 꼬리 부문이 뜯겨 나간 것을 보면 먹잇감으로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
흡사 아프리카 초원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이다.
달아나는 개들을 목격한 손씨는 '진돗개 크기의 검은 개 1마리와 누런 개 2마리였고, 매우 민첩했다"며 "다른 소 1마리도 다리 등에 이빨 자국을 낸 것을 볼 때 늑대나 다름없어 보였다"고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마을에서는 지난달 28일에도 염소와 닭이 들개로 보이는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는 일도 있었다.
이곳에서 약 2㎞ 떨어진 김모(64)씨 주말농장에서 염소 3마리와 닭 5마리가 물려 죽은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농장에 둘러쳐진 철제 울타리가 들춰져 있고, 주변에 개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들개떼 공격이 잇따르면서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소까지 물어 죽이는 들개떼가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냐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 마을 김영관 이장은 "마을 뒷산에 고라니 사체가 나뒹굴 정도로 들개떼의 공격성이 강하다"며 "주민들이 들개떼를 만날까봐 외진 곳은 출입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야생에 적응한 들개는 먹잇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늑대처럼 공격성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인왕산 부근 주택가에서 주민이 키우는 새끼고양이를 들개떼가 물어 죽이는 모습이 CCTV에 찍혀 충격을 줬다.
대전 야생동물 구조관리센터 오제영 수의사는 "개의 조상은 이리나 자칼(jackal)로 알려졌으며, 오랫동안 사람 손에서 벗어나게 되면 어느 정도 야생성을 회복한다"며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약자라고 판단되는 노인이나 어린이 등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생성을 회복해 골칫거리가 된 들개떼는 전국 여러 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서울에만 140마리가 넘는 들개떼가 북한산·인왕산·관악산 주변에 무리지어 생활하면서 등산객을 위협하거나 먹이를 찾아 주택가를 어슬렁거린다.
지난해 서울시가 집중포획에 나섰지만, 눈치 빠른 들개들이 포획틀에 잘 걸려들지 않고 계속 번식하고 있어 개체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 산간지역도 멧돼지와 더불어 들개떼가 활개치고 다니면서 가축이나 사람을 위협한다.
제주도가 직접 나서 해마다 '폭군'으로 등장한 멧돼지와 들개떼를 솎아내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들개의 경우는 멧돼지보다도 활동반경이 훨씬 넓어 개체 수나 서식실태조차 파악되지 않는다"며 "반려동물이 버려진 뒤 야생에 적응하면 생태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므로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옥천군과 소방당국은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들개떼 포획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반경이 워낙 넓고, 민첩하게 움직여 뒤를 좇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옥천군 관계자는 "전문 엽사 등으로 구성된 유해 야생동물 기동포획단이 구성돼 있지만, 들개의 경우 유해동물로 지정되지 않아 이들을 투입하기 곤란하다"며 "마취총을 보유한 엽사들을 투입해 소를 공격한 개들을 포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