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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IOC위원' 유승민 파격 대우…선수촌 28일 만에 호텔 투숙

By 박세환

Published : Aug. 21, 2016 -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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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34·삼성생명 코치)이 21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을 떠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돼 예우가 격상되면서 호텔로 옮겼다. 선거운동을 위해 지난달 24일 선수촌에 들어온 지 28일 만이다.


하루 투숙비 100만 원을 넘는 호텔 비용은 IOC가 100% 부담한다.

올림픽 폐막식이 열리는 21일 저녁에는 IOC 위원 투표로 선수위원을 공인받는다.

선수촌을 떠나기 직전에 연합뉴스와 단독으로 만난 유승민은 '깜짝 당선'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뭔가 새로운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5일간 힘들었던 선거운동 과정을 떠올렸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승민은 투표가 시작되는 지난달 24일부터 본격활동을 벌였다.

시차 적응에 3~4일 걸리지만 그렇게 한가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선거운동 첫날부터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강행군을 벌였다.

복장은 말끔한 단복 차림이었다.

숙소를 나올 때는 항상 백팩을 짊어졌다. 그 안에는 식수와 홍보용 책자, 선크림을 넣었다. 더운 날씨에 갈아입을 옷도 챙겼다.

숙소를 나설 때는 도둑처럼 조심조심 뒷걸음쳤다. 곁에 자던 탁구대표 주세혁이 깰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주세혁은 중학교부터 국가대표 상비군에서 같이 훈련한 사이다.

옆방에는 정영식과 이상수가 있었다.

숙소를 나서면 곧바로 선수촌 내 버스 정류장에 갔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가려고 아침부터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다.

선수들을 보면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반갑게 웃으며 다가갔다. 의아해하는 눈빛도 가끔 돌아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IOC 선수위원 후보 책자를 보여주고서 '굿모닝, 굿 럭'이라는 인사도 했다.

선수들이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가볍게 인사하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했다.

오전 10시께 경기장을 나가는 선수들이 뜸해지면 국기 광장으로 옮겼다.

경기가 없어 망중한을 즐기는 선수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이들에게는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고, 무슨 종목에 출전했는지 등을 물으며 자연스레 대화했다.

후보 책자를 보여주며 홍보도 했다.

점심은 대부분 빵과 라면으로 때웠다.

이곳에 오기 전 23명의 후보 중 자신의 인지도가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옐레나 이신바예바 말고는 다 똑같았다고 유승민은 판단했다.

이렇게 끝까지 하면 50%는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도 가졌다.

하루 3만 보 이상 걷는 강행군을 벌인 이유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아내와 통화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다. 영상 통화로 두 아들을 본 것은 천군만마의 도움이 됐다. 2011년 결혼해 5살, 3살짜리 아들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그렇게 발로 뛴 선거운동이 효과를 나타냈다. 언제부터인가 버스 정류장에 가면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고, 인사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힘내라며 물과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는 선수도 있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는 헌신적인 선거운동에 감동해 투표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려줬다.

북한 선수 3명도 자신에게 "투표했다"고 했을 때 정말 울컥했다.

발품을 판 탓에 어느덧 선수촌에서는 알려지기 시작했다.

투표 마감일은 지난 17일이었다. 탁구 남자 대표팀 3~4위전 날이었다. 투표는 오후 2시까지인데 경기는 오전 11시에 시작했다.

한 표라도 더 얻으려면 경기장에 못 가는데 그렇다고 경기장에 안 가자니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두 시간을 대표팀을 위해 쓰자고 마음먹고 12시 돼서 갔다. 그 바람에 정영식이 이기는 첫 경기는 보지 못했다.

25일간의 선거운동이 끝나고 결과 발표만 남았다.

떨려서 발표장에 가지 못했다.

숙소에서 마냥 기다리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등이라며 빨리 발표장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믿기지 않았다. 발표장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환하게 웃어주는 것을 보고 실감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구도 당선을 예상하지 못한 무명의 반란이었다.

유승민은 IOC 선수위원으로서의 각오도 밝혔다.

우선은 서투른 영어 공부에 주력하기로 했다.

선거운동 당시 초심을 잊지 않고 IOC 선수위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해서 인정받겠다는 포부도 있다.

인터넷에 거론되는 김연아 문제도 꺼냈다.

"기사를 보면 마치 내가 김연아의 꿈을 빼앗은 것 같아 속상한 것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김연아의 굉장한 팬이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존경했다"는 말도 곁들였다.

유승민은 "굉장히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며 "기회가 되면 꼭 만나서 배우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