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측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5,500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장본인인 나치 총통 아돌프 히틀러를 전쟁 발발 불과 6개월 전 그를 암살할 계획이 있었으나 영국 정부에 의해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역사소설가 제임스 맥마누스가 영국 언론 미러지(Mirror紙)에 22일 기고한 글에 따르면 히틀러가 베를린을 침공하기 6개월 전인 1939년 3월, 영국 정부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저격수를 투입해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을 보고받았다.
당시 베를린 주재무관(駐在武官)이었던 노엘 메이슨 맥팔레인(Noel Mason MacFarlane) 대령의 보고에 담긴 계획에는 보고 시점 한 달 뒤인 4월 히틀러가 50세 생일을 기념하는 열병식 무대에 오른 그를 저격 사살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저격수는 열병식이 열리는 곳에서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 메이슨 맥팔레인의 방에서 저격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슨 맥팔레인 대령은 이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영국으로 귀국했고, 영국 비밀정보부(SIS)는 그에게 조심스레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히틀러 암살 계획은 평화정책을 고수하던 영국 정부에 의해 무시당하고 말았다. 기고문에 따르면, 당시 총리였던 네빌 챔벌레인(Neville Chamberlain)과 외무장관 로드 핼리팩스(Lord Halifax)의 공통된 의견은 바로 상대국 총통을 암살하는 것이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결국, 메이슨 맥팔레인 대령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는 베를린으로 돌아가자마자 베를린 주재무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
1930년대 중후반 당시 히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 정전 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에 따르지 않고 라인랜드,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을 공격했으며, 또한 나치를 무장조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연합군측은 이에 평화주의를 고수했다. 온건한 평화주의를 버리고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면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제임스 맥마누스의 주장이다.
(khnews@heraldcorp.com)
역사소설가 제임스 맥마누스가 영국 언론 미러지(Mirror紙)에 22일 기고한 글에 따르면 히틀러가 베를린을 침공하기 6개월 전인 1939년 3월, 영국 정부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저격수를 투입해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을 보고받았다.
당시 베를린 주재무관(駐在武官)이었던 노엘 메이슨 맥팔레인(Noel Mason MacFarlane) 대령의 보고에 담긴 계획에는 보고 시점 한 달 뒤인 4월 히틀러가 50세 생일을 기념하는 열병식 무대에 오른 그를 저격 사살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저격수는 열병식이 열리는 곳에서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 메이슨 맥팔레인의 방에서 저격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슨 맥팔레인 대령은 이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영국으로 귀국했고, 영국 비밀정보부(SIS)는 그에게 조심스레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히틀러 암살 계획은 평화정책을 고수하던 영국 정부에 의해 무시당하고 말았다. 기고문에 따르면, 당시 총리였던 네빌 챔벌레인(Neville Chamberlain)과 외무장관 로드 핼리팩스(Lord Halifax)의 공통된 의견은 바로 상대국 총통을 암살하는 것이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결국, 메이슨 맥팔레인 대령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는 베를린으로 돌아가자마자 베를린 주재무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
1930년대 중후반 당시 히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 정전 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에 따르지 않고 라인랜드,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을 공격했으며, 또한 나치를 무장조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연합군측은 이에 평화주의를 고수했다. 온건한 평화주의를 버리고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면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제임스 맥마누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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