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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쌤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화됐는데…기업들 발만 '동동'

By KH디지털1

Published : Feb. 21, 2016 -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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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평판도 있고, 직원 사기 문제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을 만드는 방향으로 알아보고는 있지만 난감합니다."

한 기업체 경영지원실 관계자는 21일 직장어린이집 설치에 대한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인 사업장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부터 직장 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유아보육법은 기업이 직접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지역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직원에게 보육수당을 주면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쳤지만, 올해부터는 인정받지 못한다.

의무 설치 대상인데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으면 1년에 2회까지, 1회당 최대 1억원, 연간 최대 2억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어린이집 설치 의무대상 기업 1천204곳 중 52.8%만 어린이집을 설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소 200여곳의 기업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여서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담은 영유아보육법은 2014년 4월 국회를 통과했다. '일과 가정 양립'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해 출산율을 높이자는 취지에서다. 한국은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아이의 숫자인 합계 출산율이 2001년 이후 15년째 1.3명 미만의 초저출산국가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의도에 공감하면서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데다 규제가 너무 많아 실제로 이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도심에 있는 상당수 사업장은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려고 해도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다.

수요층이 두텁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실제 이용하는 근로자가 적다는 불평도 있다. 일반 사업장과 달리 외근이 많거나 파견 근무를 주로 하는경우 힘들게 직장 어린이집을 만들어도 이용할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설치 기준도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불만이 많다. 이를테면 2층에 설치하려면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출입구를 둬야 한다. 무엇보다 주변에 주유소나 유흥시설이 없어야 한다.

운영비용도 만만찮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고용 보험기금에서 어린이집 설치 비용을 일부 지원하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려면 49명을 정원으로 잡아도 초기비용만 20억원가량 들며, 여기에 임대료와 위탁운영비용 등을 합하면 연간 7억∼8억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비용 절감에 목을 매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금액이다.

정부가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애초의 직장 어린이집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의무 이행이 어려운 사업장에는 지역 어린이집과 계약(보육 수요의 30% 이상)을 맺고 위탁 보육을 하는 경우도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경우 직장과 가정생활의 병립이라는 제도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직장 어린이집을 만들면서 기존에 주던 양육 수당이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직장 어린이집 비용에 양육 수당까지 지출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에게 이중의 비용이 나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실효성 없는 정책에 양육 수당만 줄게 됐다"는 탄식도 나온다.

직장 어린이집 이용 수요가 많은 경우에는 막상 이용하려고 해도 자리가 없어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다.

모든 직장 어린이집의 최저 정원이 '상시 영유아 5명'이어서 사업장이 형식적으로 적은 정원의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원이 지나치게 적은 곳에서는 직장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취업 문 뚫기만큼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무 사업장의 기준이 500인 이상인 것은 이 정도 규모의 사업장은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할 사회적인 의무가 있다는 의미"라며 "결국 직장 어린이집이 가정 친화적인 근무 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