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에서 임금피크제(임피제)에 직면한 직원들은 대부분 희망퇴직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NH농협·KEB하나·신한은행에서 50대 중반 무렵부터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행원 가운데 잔류하는 사람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별로는 NH농협은행의 잔류 확률이 가장 낮다.
작년 임금피크제 대상인원 290명 전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적용 대상은 만 57세부터다.
KEB하나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작년 236명의 임금피크제 대상 인원 가운데 1명만 잔류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한은행에서도 '임금피크제 적용 = 퇴사' 공식이 거의 지켜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대상 중 성과우수자는 임금 삭감을 면제해 준다는 점에서 다른 은행의 임금피크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관리자급 이상에게 적용되는 차등형 임금피크제 대상인원 140명 가운데 50명은 성적우수자로 분류돼 직전 임금을 그대로 받는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 90명은 모두 퇴직을 선택했다.
이중 70명이 퇴직 후에 시간제 계약직인 관리 전담직으로 일하지만 임금이 삭감되는 관리자급은 전원 퇴사한 셈이다.
관리자급 미만에 적용되는 일반임금피크제 대상 인원 50명 가운데는 30명이 짐을 쌌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000030]은 비교적 희망퇴직률이 높지 않은 편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작년과 올해 임금피크제 대상 인원 700명 가운데 170명 정도(약 24%)만 희망퇴직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작년 5월에는 대상자 약 1천 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470여 명이 희망퇴직을 택했다.
2005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한 우리은행은 작년 대상자 약 400명 중 60%인 240명이 떠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을 준비하지 못하거나 자녀결혼을 앞둔 사람, 학자금 지원 등을 받으려는 직원들이 주로 임금삭감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다니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해당 연령의 은행원들이 대부분 퇴사를 선택하는 것은 금전적인 이유에서 회사에 남을 만한 유인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 남아 앞으로 받게 될 급여는 희망퇴직에 따른 위로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직급이나 연차에 따라 더 적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A은행의 경우 임금피크 대상자는 임금피크에 들어가는 첫해에 직전 급여의 70%를 받고서 이듬해부터 60→50→40→30% 수준으로 급여가 떨어진다.
반면에 희망퇴직을 선택하면 24~37개월치의 위로금을 받는다.
5년간 받는 급여와 비슷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많다.
B은행 임금피크제 대상자는 5년간 매년 50% 수준을 받고 C은행 대상자는 첫해 65%를 보장받고서 이듬해부터 급여가 45→35→35% 수준으로 급락한다.
이 때문에 임금피크제의 본질적인 목적인 고용연장을 보장하려면 임금 삭감률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은행권 관계자는 "임금피크제가 본래의 목적을 유지하려면 임금 삭감폭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임금피크제가 퇴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IMF 사태 이후 고용안정 수단의 하나로 금융권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나 이제는 고용 안정이 아니라 퇴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권은 이미 특별퇴직, 임피제에 따른 희망퇴직 등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살벌한 곳이 됐다"며 "여기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되고 임금 삭감까지 추진되면 일자리의 질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