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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벼락 맞은 그리스 관광객…'고대해온 휴가 망칠 판'

By KH디지털2

Published : June 30, 2015 -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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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타결 기대감 속에 그리스로 예정된 휴가를 떠난 관광객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그리스 정부의 자본통제 조치로 현지 현금 확보와 신용카드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손꼽아 기다려온 휴가를 망치게 됐기 때문이다.

국민투표 승부수를 띄운 그리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에겐 현금인출이 제한되지 않는다고 다독이고 있지만 휴가 일정을 단축해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금인출기(ATM)에 돈이 바닥나고 호텔과 식당 등에서 신용카드를 받지 않으면서 그리스 내 외국인 관광객이 현금을 구하지도, 카드 결제를 하지도 못할 처지에 내몰렸다고 보도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휴가를 온 스티븐 윌은 지난 주말에 현금을 뽑으려고 ATM을 전전했다. 다섯 군데의 ATM 앞에 줄을 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결국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윌은 가족과 아테네와 에게해의 섬 두 곳을 돌며 1만3천 달러(약 1천400만원)를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은 현금이 없어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형편이 됐다.

그는 "이번 가족휴가를 2년간 계획해왔다"면서 "현금을 구하지 못하면 사흘 이상 머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그리스로 신혼여행을 온 발렌티나 로시와 남편 클라우디오도 아테네를 떠나 산토리니 섬으로 가는 여정에 오르기 앞서 그리스 주재 본국 대사관에 산토리니로 가도 괜찮은지 문의부터 했다.

ATM이 제대로 되지도 않고 호텔에서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대신 현금을 요구해 꿈 같아야 할 신혼여행이 이미 악몽으로 변했다. 

로시는 "신혼여행은 이미 엉망이 됐다"면서 "그리스 사태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나빠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속상해했다.

관광업계 종사자들도 당황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테네 플라카 지역의 기념품가게 주인은 자본통제설이 들려올 때부터 손님에게 현금을 받았다면서 "대신 값을 깎아주는데 상당수는 그냥 가버린다. 매일 전면 파탄 상태에 다가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유 일정으로 휴가를 온 관광객의 고충은 더욱 크다.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을 온 관광객들은 숙박 등을 이미 결제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유 여행의 경우는 갖고온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대금을 지불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관광산업이 경제를 지탱하는 나라다. 지난해 관광객이 결제한 숙박비만 170억 유로(약 21조원)로 그리스 국내총생산의 9%를 차지한다.

여기에 식당과 기념품 가게 등 여행지 주변에서 발생하는 수입이 450억 유로(약 55조원) 규모에 달한다고 WSJ는 전했다. 

그리스 정부가 은행 영업을 중단하고 자본통제를 단행하면서도 외국인 관광객의 현금인출을 제한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돌리면 이제부터 시작인 여름휴가철 대목마저 놓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는 그리스로 가는 자국민 여행자에게 현금을 챙기라고 권고했다. 영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리스 관광에 나선 자국민을 본국으로 데려오는 대비책도 마련해뒀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