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최신호에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전개된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직접 테러범과 용의자들을 색출·검거·살해하는 실행기관으로 변모한 역정을 추적했다.
이 잡지는 '임무: 제지불능(UNSTOPPABLE)'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CIA가 이 과정을 통해 다른 경쟁 정보기관들을 따돌리고 백악관과 의회 등의 견제·비판 세력을 무력화하거나 제거함으로써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공룡이 됐다고 지적했다.
CIA는 대이라크 정보 실패, 무인기 공격에 의한 민간인 희생,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불법 구금과 고문, 상원 정보위원회 컴퓨터 불법수색 등의 추문들로 인해 불법·비리·무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CIA는 테러와의 전쟁 역량 뿐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직접보고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신임, 미 정부 곳곳에 포진한 명문대 학맥과 CIA 출신 인맥 등에 힘입어 늘 승자로 등장했다고 포린 폴리시는 분석했다.
◇ '살인 기계'로 변신 = 지난 2002년 가을, 예멘의 한 비포장 도로 상공에서 스포츠형차량(SUV)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던 프레데터 무인기로부터 발사된 헬파이어 미사일이 차량에 타고 있던 알카에다 야전사령관 카에드 살림 시난 알 하레티와 동승자들을 제거했다.
이는 CIA가 무인기를 이용, 수배 테러범을 표적 살해한 첫 사례.
포린 폴리시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방식의 변화를 다룬 마크 마제티 기자의 책 '외과수술 요법(The Way of the Knife)'을 인용, 이를 "CIA의 놀라운 형질전환의 이정표"라고 소개했다.
CIA는 1947년 창설 이래 스파이 활동으로부터 목표를 추적·살해하는 활동으로 점진적으로 바뀌어왔지만, 1975년 상원 청문회에서 외국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음모가 탄로난 뒤 이듬해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의 명령으로 정치암살 행위가 금지됐었다.
그러나 9.11은 CIA가 말 그대로 '죽이는 일'로 복귀하는 계기가 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그를 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인기를 이용해 개별 목표물을 '사냥'토록 승인한 것이다.
사실 CIA는 테러리즘이 워싱턴의 주관심사로 떠오르기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주목해 1986년에 이미 '반테러리스트 센터'를 만들고 1996년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전담 추적팀을 구성한 데 이어 1998년엔 알 카에다와의 전쟁을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 연방수사국(FBI), 기타 어떤 정보기관보다 앞섰던 CIA의 이러한 지도적 역할이 오늘날 테러와의 전쟁에서 CIA의 주도권 장악의 밑거름이 됐다고 포린 폴리시는 말했다.
◇ CIA 스캔들 = CIA가 반테러리즘에 쏟아부은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감안하면 9.11테러 음모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막지 못한 것은 CIA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오점이라고 포린 폴리시는 지적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대량살상무기 개발·보유 여부에 관한 CIA의 그릇된 정보가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가는 길을 닦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엔 이슬람국가(IS)의 등장이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병탄 계획을 사전에 정확히 예보하지 못한 사실도 CIA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CIA가 운용하는 무인기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 CIA의 입장이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은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수백명에 이르는 상당한 증거를 수집해 제시했다.
포린 폴리시는 탐사보도협회(BIJ)의 자료를 인용, 파키스탄에서만 해도 2004년 6월부터 지난 4월까지 어린이 최대 207명을 포함해 민간인 사망자가 960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적했다.
CIA가 전 세계에 걸쳐 운용한 비밀감옥과 그 안에서 이뤄진 물고문등 가혹 행위들도 CIA의 추문으로 기록된다.
지난해 3월, 다이앤 파인스타인 당시 상원정보위원장은 CIA가 정보위의 CIA고문 실태 조사 상황을 염탐하기 위해 정보위 컴퓨터를 불법적으로 열어봤다며 CIA를 맹렬하게 규탄했다.
파인스타인 당시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 시절 CIA의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CIA의 불법 감금과 고문 실태에 관한 수년간의 조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이었다.
파인스타인은 평소 의회내 최대의 CIA 지원자중 한 사람으로, 테러리즘 용의자들을 표적 살해하기 위한 무인기 활용도 열렬히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나, CIA의 불법 컴퓨터 수색 문제로 CIA와 의회관계가 40년래 최저 수준으로 악화됐다.
◇ "CIA, 아무도 막을 수 없다" = 존 브레넌 CIA 국장은 처음엔 파인스타인 의원의 비난을 "전적으로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으나 결국 4개월 후 정보위 컴퓨터를 해킹한 사실을 시인했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지난해 12월 초 CIA의 고문 사실과 이를 통해 얻은 정보 가치를 정부와 의회, 국민에게 과장 보고한 사실 등을 담은 조사보고서 요약본을 공개한 데 이어 고문을 원천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파인스타인 의원이 입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더라도 지난해 중간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고 포린 폴리시는 예상했다.
브레넌 국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협상의 성과와 IS 퇴치 전략을 옹호하는 얼굴로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파인스타인에 이어 상원 정보위원장을 맡은 공화당의 리처드 버 의원은 "정보위 내부 일을 공개 논의하는 것은 안된다"며 파인스타인 의원이 정부 각 기관에 배포한 고문보고서 전문을 즉각 회수해줄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이는 혹시라도 정보공개법에 의해 보고서 전문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포린 폴리시는 지적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말했듯이 CIA는 '보통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CIA 힘의 원천은 워싱턴의 힘있는 기관들에 대한 '비공식적인 접근권'이라고 포린 폴리시는 분석했다. CIA 국장을 비롯한 인적 자원 상당수가 '아이비리그, 미국 정치의 동부 권력구조'와 인맥을 형성하는 데서 오는 힘이라는 것이다.
CIA의 경쟁 정보기관인 국방정보국(DIA)에서 일한 한 전직 분석관은 CIA 고위간부들이 백악관 고위간부나 영향력있는 의원들과 같은 대학 출신인 점을 지적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앨런 덜레스 CIA 국장부터 포드 행정부 시절 조지 H.W. 부시 국장, 오바마 행정부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국장에 이르기까지 프린스턴대, 예일대 등 아이비 리그 학맥이 CIA 고위층에게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러나 CIA의 최대 힘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고 대통령에 대해서만 책임진다는 점에 있다.
군사정보를 전문으로 하는 국방부의 DIA는 국방부 소속이고, 국내 방첩 활동을 하는 FBI는 법무장관에 대해, 국무부의 정보조사국(BIR)은 국무장관에 대해 책임진다. 미국의 정보기관중 최대 인력과 자금을 운용하는 국가안보국(NSA)마저 기술적으론 국방부 소속이다.
이에 비해 CIA는 대통령에게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에 '비밀활동 전쟁에서 전례없는 비밀활동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다른 정보기관들과 마찰도 주저하지 않는다고 포린 폴리시는 전했다.
2012년 DIA가 국방비밀공작국(DCS)을 창설하려 했을 때 CIA 일부 간부들은 이것이 CIA의 비밀공작조직인 국가비밀공작국(NCS)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보고 극렬하게 반대했다.
CIA가 이 계획을 좌절시킨 방법은 해외공관에 파견된 비밀공작원의 신분을 위장할 공식 주재관 자리를 움켜쥐고 양보하지 않는 것. 국무부가 정보기관용 주재관 숫자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DCS를 추진하던 마이클 플린 DIA국장은 2014년 8월 갑자기 사임했고, 후임인 빈센트 스튜어트 국장은 자신의 업무 우선순위에서 DCS 창설 계획을 뺐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 점은 CIA 출신들이 미 정부 기관 요직에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의 경우에도 로버트 게이츠, 레온 파네타 두 CIA 국장 출신이 연속으로 국방부 장관이 됐고, 1980년대 아프간에서 CIA의 비밀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한 마이클 비커스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국방부의 특수작전담당 차관보를 지낸 데 이어 국방부 소속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차관으로 승진했다.
CIA가 대통령의 가장 효율적인 외교정책 수단이라는 사실은 CIA와 대통령의 관계를 더욱 유착하게 만든다.
오바마 대통령도 다른 많은 대통령들처럼 취임 전에는 CIA의 효용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채 국내 문제에 주로 관심이 있었으나, 취임 후 외교정책이 애초 생각 이상으로 중요함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전직 CIA 고위간부는 설명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