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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ts find remains of England's King Richard III

By 윤민식

Published : Feb. 5, 2013 -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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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king of England, but for centuries he lay without shroud or coffin in an unknown grave, and his name became a byword for villainy.

On Monday, scientists announced they had rescued the remains of Richard III from anonymity _ and the monarch's fans hope a revival of his reputation will soon follow.

In a dramatically orchestrated news conference, a team of archaeologists, geneticists, genealogists and other scientists from the University of Leicester announced that tests had proven what they scarcely dared to hope _ a scarred and broken skeleton unearthed under a drab municipal parking lot was that of the 15th-century king, the last English monarch to die in battle.

Lead archaeologist Richard Butler said that a battery of tests proved “beyond reasonable doubt” that the remains were the king's.

Lin Foxhall, head of the university's school of archaeology, said the discovery “could end up rewriting a little bit of history in a big way.”

Few monarchs have seen their reputations decline as much after death as Richard III. He ruled England between 1483 and 1485, during the decades-long battle over the throne known as the Wars of the Roses, which pitted two wings of the ruling Plantagenet dynasty _ York and Lancaster _ against one another. (AP)


<관련 한글 기사>


‘꼽추왕’의 유골, 수백년만에 발견!


고고학계의 집요한 추적 노력으로 지난해 한 공영주차장에서 발굴된 유골이 중세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3세'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4일(현지시간) 발굴팀이 발표했다.

영국 레스터 대학 발굴팀은 이날 기자회견을 하고 "DNA 분석 등 수개월에 걸친 정밀 조사 결과 유해의 주인공이 리처드 3세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발굴팀을 이끈 고고학자인 리처드 버클리 교수는 "리처드 3세의 유골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이번 작업은 고고학 연구의 기념비적인 개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골 확인 과정에서 엄격한 과학적 분석을 거쳤으며, 유골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결과도 1455~1540년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발굴팀은 이날 기자회견을 앞두고 발굴 작업으로 복원한 '리처드 3세'의 유골 사진을 사전에 공개했다. 

레스터대 발굴팀은 지난해 9월 레스터의 한 주차장에서 리처드 3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하고서 왕가 후손인 캐나다인 마이클 입센 씨와 DNA 비교를 하는 등 주인공을 밝혀내기 위한 분석 작업을 벌였다.

발굴팀은 이에 앞서 고지도와 현대지도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유골이 매장된 옛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의 터를 찾아냈다.

DNA 분석은 리처드 3세 누이인 '요크의 앤'의 직계 후손을 찾아 모계 유전자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분석작업을 맡은 유전학자인 튜리 킹 교수는 "직계 후손 2명과 유골의 유전자를 비교했더니 혈통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생물고고학적 분석 결과도 이 같은 결론을 뒷받침했다.

이 대학 생물고고학자인 조 애플비 교수는 "발굴된 유해에서 비정상적인 척추 측만증이 확인돼 리처드 3세가 '꼽추왕'으로 알려진 부분과 맞아떨어진다"고 밝혔다.

애플비 교수는 유골의 주인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남성으로, 사망에 이른 시점에 두개골 8곳 등 10군데를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두개골 부위의 큰 상처 2곳은 깊이가 10㎝나 돼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유골의 주인은 척추측만증이 심했지만 알려진 것처럼 허리가 굽은 꼽추는 아니며, 팔 골격도 정상이라고 밝혔다.

리처드 3세는 1485년 장미전쟁을 끝낸 보즈워스 전투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리치 먼드 백작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해 32세로 최후를 맞았다.

1483년 형인 에드워드 4세 왕이 사망하자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제치고 왕좌에 올랐으나, 재위 기간은 26개월에 그쳤다. 그는 전투에서 사망한 최후의 영국 왕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레스터에 있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1530년 무렵 수도원이 파괴돼 무덤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에 따라 16세기에 시신이 파헤쳐져 강에 버려졌다는 등 가설도 제기됐다.

그는 또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에서 형과 조카를 살해한 포악한 왕으로 그려졌으 나 이는 플랜태저넷 왕조에 이은 튜더 왕조의 왜곡된 선전의 결과라는 반론도 따른다.

발굴팀은 리처드 3세의 시신이 수의와 관을 사용하지 않고 매장됐으며, 팔이 묶인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리처드 3세의 유골은 이번 발굴에 따라 주차장 터를 떠나 조만간 인근 레스터 성당에 안치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