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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재원 잇단 '말 바꾸기'…금융시장 불안 커진다

By KH디지털2

Published : May 8, 2016 -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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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 3사 (Yonhap) 조선업계 3사 (Yonhap)

경제부총리 "추경 검토안해"→"추경도 검토"
한은 총재 "자본확충펀드 방식 대출"→"공식입장 아냐"
당국 오락가락에 구조조정 방향 오리무중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 구조조정이라는 대수술을 집도(執刀)할 정책 당국의 수장들이 재원마련 방법과 절차 등을 놓고 수시로 말을 바꾸며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검토할 수 있다고 자신의 발언을 뒤집으며 오락가락했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구조조정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해놓고 출자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 혼란을 가중했다.

글로벌 장기침체에 대비해 국내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경쟁력 있는 먹거리를 찾아야 할 판에 이런 식으로 부실기업 정리도 못 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앞날엔 먹구름이 짙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인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정책당국이 불협화음을 줄이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줘야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시장의 불안과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랬다 저랬다' 구조조정 시나리오 여전히 '안갯속'

유일호 부총리가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어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이 돼가지만,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구조조정의 재원은 재정을 투입해야 하지만 정부는 야당으로부터 질타를 받을 것을 우려해 국회를 통하지 않고 한은에 떠넘기는 편법을 동원하다 한은의 반발에 부닥쳤다.

유일호 부총리는 해운·조선업종의 구조조정이 추경 편성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추경 가능성을 부인했다가 지난 4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필요하다면 그렇게(추경) 할 수도 있다"면서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유 부총리는 또 지난 2일 한은이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전제로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는 질문을 받고 "국민적 공감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내심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4일엔 오히려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발언과 입장이 오락가락한 것은 한은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윤면식 부총재보는 지난달 29일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서 재정의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한은의 발권력 동원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주열 총재는 지난 2일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 갈등이 봉합되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하지만 이 총재는 지난 5일 독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출자보다 대출이 적합하다"고 여전히 출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2009년 조성했던 은행자본확충펀드 방식을 제안했다.

이어 그는 지난 6일 독일 출장에서 귀국하면서 "자본확충펀드가 한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고 다시 한발 물러서며 "모든 방안을 협의체에서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 아마추어식 제안 '불쑥', 은행·기업 불안만 키워

현재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기업 구조조정은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키워 여러 가지 부정적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폭탄'이다.

외환위기 때 경험했듯 금융시장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워 멀쩡한 기업도 신용경색을 겪게 할 수도 있고 부실여신이 커져 은행을 휘청거리게 할 수도 있다.

하나금융투자 김상만 연구원은 "구조조정 이슈로 인해 금융시장은 분위기상 부정적인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그에 따라 구조조정의 핵심 영향권에 있는 회사채 투자심리는 전반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이 쏟아내는 발언은 이런 구조조정의 부정적 영향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장에 정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줘서 불안감을 진정시켜야 할 당사자들이 오히려 불쑥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던지는 아마추어식 화법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부총리는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 대해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줄곧 밝혀왔으며 이런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고 말했다.

추경도 모든 방안에 들어가는 것이며 야당이 추경에 협조적이라면 당연히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민적 공감도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에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는 게 부총리의 생각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한은도 "협의체에서 모든 방안을 놓고 논의하겠다는 것이 이 총재와 한은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 "한은이 해야 할 역할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책당국의 수장들이 명확하고 분명한 시나리오를 갖고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환부(患部)를 도려낸 뒤 다른 기업이나 업종, 금융 부문 등으로 여파가 번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지금 나오는 방안들은 상당히 기술적인 이슈들이므로 충분한 협의를 하고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면서 "시장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속히 협의체를 구성해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