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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에 고교졸업…"성차별로 배움의 한 평생 남았다"

By KH디지털1

Published : Feb. 14, 2016 -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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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Yonhap)

"돌아서면 까먹으니 주기율표 외우기 가장 어려웠어요"
방통고 졸업장 받고 대학에도 합격한 박연자씨


"돌아서면 까먹으니 괴로웠지만 인생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공부가 무슨 대수였겠어요."

14일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에서 열린 2015학년도 졸업식에 참석한 박연자 씨는 칠순의 나이에 졸업장을 받는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박 씨는 전북 고창에서 살던 어린시절 단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만 마치고 공부를 더 하지 못한 것이 평생 설움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는 "남자 사촌 동생들이 전라도에서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며 "몇 년 전에 우연히 만학도들이 갈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용기를 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50여년 만에 부산 미용고 병설 중학교에 입학, 3년 과정을 마친 박 씨는 내친김에 고교 과정에도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방송통신고를 알게 됐다.

고령이다 보니 '말길'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데, 방송통신고 수업은 컴퓨터로 얼마든지 반복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박 씨는 "1회 수업을 보통 4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는데 많게는 하루 7∼8회씩 들었다"며 "새벽 5시에도 일어나 듣고, 밥 먹고 와서 또 듣고, 그렇게 틈만 나면 수업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10과목 시험을 치른 날은 너무 힘들어 '파김치'가 됐다는 그는 수학을 포기한 대신 영어에 집중한 '학습 비결'도 소개했다. 수학은 중학교 과정까지만 해도 즐거웠으나, 고교 과정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박 씨는 "그래도 영어는 사회에 나와서 써먹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 한자라도 더 외우려고 노력했다"며 "과학에서는 원소 주기율표를 외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성실한 학업자세로 교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우수 학생으로 뽑힌 그는 경남정보대 수시모집에도 지원,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박 씨는 "힘들지만 알아가는 재미에 '이래서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구나'라고 느꼈다"며 "대학교는 직접 수업을 들으러 다녀야 해서 걱정도 되지만, '즐겁게 해보시라'는 사위의 격려에 힘을 내보려 한다"며 웃었다.

경기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를 졸업하는 이혜숙(가명·64) 씨도 우수한 성적으로 성신여대 일어일문과 수시전형에 합격해 만학도들의 모범이 됐다.

이 씨는 어릴 때 심한 피부병으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결국 중학교를 중퇴, 공부를 그만뒀다.

두문불출하며 지내던 그였지만 오빠의 가정교사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이가 생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호기심이 많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아이를 보며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씨는 검정고시와 방송통신고 수업으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이제 대학 입학을 앞두게 됐다.

이 씨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가족들이 다 놀라더라.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나중에 만나면 잘했다고 말씀해 주실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외에도 75세에 조선대 법학과 수시에 합격한 김모씨(광주고 부설 방통고), 신체장애를 딛고 학생회 정보부장, 카페지기 등 교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박모(60·경동고 부설 방통고)씨 등 갖가지 사연의 만학도들이 졸업장을 받게 됐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전국 42곳의 방송통신고는 학교별로 14일부터 졸업식을 열고 총 3천792명의 졸업생을 배출할 예정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