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면 간통죄 폐지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특히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혼인 파탄에 잘못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 '유책주의' 입장을 고수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혼 요건이 완화되지 않은 탓에 이혼 소송 추이에는 별 변화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 작년 이혼소송·협의이혼 접수 오히려 소폭 줄어

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새로 접수된 이혼 소송은 3만9천372건으로 전년의 4만1천50건에 비해 4.0％ 감소했다.

지난해 1월 3천168건이었던 소송 건수는 2월 2천540건으로 크게 줄었다가 그 달 26일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나온 뒤 3월에는 3천540건으로 크게 치솟았다. 그러나 5월에 3천50건으로 줄었고 월평균 3천281건을 기록해 전년(3천420건)보다 다소 줄었다.

재판을 통하지 않고 당사자들끼리 이혼을 합의해 신고만 하는 협의이혼 역시 소폭 줄었다. 지난해 10만9천395건으로 전년의 11만3천388건에 비해 3.5％ 감소했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에도 전국에서 가정이 파탄돼 협의이혼을 하거나 이혼소송을 내는 일이 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혼의 원인에는 배우자의 불륜 외에도 성격 차이, 경제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유가 있으므로 간통죄 폐지와 관련해 어떤 결론을 섣불리 내리긴 어렵다. 하지만, 간통죄가 폐지되면 기혼자들이 불륜을 쉽게 저질러 가정이 파탄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혼 소송 시장'에서 영업하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얘기와도 다르지 않다.

양소영 변호사는 "간통죄 폐지 때문에 이혼이 증가한다는 것은 피부로 못 느끼겠다"며 "간통죄 폐지 이후 대법원에서 이혼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혼소송이 조금 늘어난 적이 있는데, 그 뒤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현곤 변호사도 "사실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도 명목만 남아있었을 뿐 사문화해온 상황이어서 위헌 결정의 영향이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간통죄로 구속되기도 하고 큰 범죄로 취급을 했지만 폐지 직전에는 혐의 적용도 엄격히 하고 처벌도 완화한 상태였다. 간통죄가 무서워서 바람을 못 피운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 "간통죄 폐지로 죄책감 사라져…불륜에도 뻔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간통죄 폐지로 불륜 행위가 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죄라는 인식이 사라져 불륜으로 배우자를 배신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뻔뻔하게 구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혼인 서약에는 정조 의무가 포함돼 있으며 법적으로도 불륜은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로 규정돼 상대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민사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법원은 기혼자와 불륜을 저지른 상대방 역시 상대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배상 책임을 지운다.

법적인 규제가 아니더라도 불륜은 배우자의 애정과 신뢰를 무참히 저버리는 행위여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다.

그럼에도 간통죄 폐지를 불륜의 면죄부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녀를 위해 참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간통죄까지 없어져 버젓이 불륜 관계를 이어가고 배우자에게 미안해하지도 않는 경우가 문제로 지적된다.

가정법률상담소의 조경애 법률구조부장은 "배우자가 대놓고 외도를 하면서 '해보려면 해봐라. 간통죄도 없어졌다'고 오히려 큰소리친다고 괴로움을 토로하는 상담자들이 눈에 띈다"며 "이런 경우 보호 장치가 전혀 없다는 하소연이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혼인관계 파탄까지는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거나 일회성 성매매 등을 통해 배우자 몰래 혼외 성관계를 갖는 현상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늘어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 '유책주의 vs 파탄주의' 결국 파탄주의 이행 전망

헌재의 간통죄 위헌 결정 뒤 6개월여 만에 대법원이 내린 이혼 소송의 유책주의 결론은 바람을 피운 배우자가 '적반하장' 격으로 먼저 이혼을 청구하지는 못하도록 했다.

형사처벌도 없어진 마당에 불륜을 저지른 이들이 쉽게 가정을 깨는 상황이 속출해 결혼제도의 안정성을 흔드는 결과가 벌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춘 판결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향후 수년간은 불륜 등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허용되지 않아 결혼-이혼 풍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의 작년 판결에서 전체 대법관 13명 중 7명만 유책주의에 손을 들어줬고 다른 6명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책임 유무를 가리는 것보다 혼인이 파탄된 상황이 더 중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섰다.

대법관들의 이런 인식 지형을 보면 앞으로 결혼과 성 문화의 개방에 따라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날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미 작년 대법원 판시에서도 유책주의를 유지하되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하는 범위가 넓어져 별거 기간이 오래된 경우나 가족 부양 책임을 성실히 이행한 경우 등에는 이혼이 허용되고 있다.

양소영 변호사는 "간통죄 폐지 후 혼인의 순결성에 관한 인식이 확실히 없어진 것 같다. 결국 파탄주의로 이행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현곤 변호사는 "혼인이 전통적으로 집안끼리의 결합이라는 측면이 커 서로의 의무가 더 강조됐다면, 앞으로는 서구 사회처럼 점점 더 개인의 문제로 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혼인을 당사자 사이의 애정에 기초한 관계로 보면 한쪽이 바람을 피워 관계에 금이 가는 상황도 가해자-피해자 관계보다는 그저 애정이 깨진 것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