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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7천 땄다는 동료 회사 관둬"...가상화폐 손익 '백태'

By Yonhap

Published : Jan. 15, 2018 -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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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을 벌기 위해 1년을 휴학했습니다. 비트코인이 좋다는 소식에 투자해서 1천만원이란 거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오르던 비트코인이 떡락(크게 떨어짐)해 현재 빈털터리입니다. 400만원이라도 등록금 부탁합니다. ○○은행 ×××-×××××-×××"

"20살 청년입니다. 저희 집은 빚만 2억 이상 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비트코인에 인생역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모아 둔 300을 투자했는데 다 잃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은행 ××××-××-×××××"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상화폐로 340억을 벌었으니 가상화폐·주식으로 돈을 잃은 사람 10∼20명에게 1억원씩을 보내 구제해주겠다'는 글이 올라오자 쏟아진 댓글 중 일부다.

댓글들 가운데는 유난히 자신을 20∼30대 등 젊은 층으로 소개한 사연이 많았다. '한순간 인생역전을 위해', '친구의 꼬임에 빠져', '전셋집이라도 한 채 장만하려고' 시작한 비트코인 투자가 오히려 자신들을 빈털터리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 내용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20∼30대가 비트코인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작 구제해주겠다고 밝힌 당사자는 "나는 비트코인으로 자본이 재편된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으로 300억∼400억 수준으로 재편된 사람이 나를 포함해 한둘이 아닌데 다들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있을 뿐"이라며 가상화폐 투자를 종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가상화폐 관련 사이트의 '수익인증 게시판'에는 수천만∼수억원의 수익을 냈다는 게시글이 하루에만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가상화폐 거래 사이트나 앱 화면에서 '현재 수익' 부분 캡처본을 첨부해 자신들이 실제 수익을 내고 있음을 인증한다.

그러면 다른 회원들은 작성자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대단하다'고 칭찬하거나 '비법을 전수해달라', '도와달라'며 읍소한다.

이달 11일에는 "현재 마이너스 3억 2천만원인데 이미 100만원으로 20억원을 벌어본 다음이어서 별로 감흥이 없다"는 게시글이 올라와 댓글 약 400개가 달리기도 했다.

20∼30대들이 이와 같은 수익인증을 모두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인증 글이 젊은이들의 가상화폐 열풍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실제 주변 인물의 가상화폐 투자 성공담까지 접하면 모방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회사원 유모(39)씨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가상화폐 수익인증을 다 믿지는 않지만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지금이라도 투자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30)씨는 "회사 후배가 2천200만원으로 2억7천만원을 벌고 퇴사하는 것을 봤다"며 "그 후에 친한 친구가 5천만원을 대출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하기에 나도 1천만 원가량을 넣었는데 지금은 함께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에는 이달 14일 오후 8시 기준 17만4천여명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가 부동산이나 주식 등 다른 금융상품과 달리 신기술이 적용됐다는 점 때문에 젊은 층들이 '투기'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30대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투자를 '투기'라고 인식하지 않고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수집해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며 "신기술이 연계돼 있으니 자신이 변화와 개혁에 발빠르게 대응해 자수성가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갑자기 크게 돈을 벌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는 일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가상화폐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내세우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곽 교수는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성공했다고 하니까 '팔랑귀'처럼 거기 흔들려 동조심에 따라하게 되는 심리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젊은이들의 가상화폐 열풍이 사회경제적 구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젊은 층들이 가상화폐에 열광하는 이유는 월급을 모아서는 집 한 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부의 격차가 큰 사회경제적 구조를 만들어놓은 기성세대의 탓도 있다"며 "젊은이들이 가상화폐에 몰리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 인생역전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열풍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만, 젊은 층 입장에서는 다른 계층 상승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김 교수는 "그렇다고 가상화폐 거래를 무작정 전면 허용하면 궁극적으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효과가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하지 않기도 어렵다"며 "이것이 가상화폐를 규제하지 않기를 바라는 젊은 층과 정부의 갈등이 비롯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