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창립 80주년을 맞는 삼성그룹의 일부 계열사 임직원 사이에서 최근 나돌고 있는 '내부 유행어'라고 한다. 대한민국 대표기업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부상했지만 "삼성이어서 죄송하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다.
복수의 계열사 고위 임원들은 20일 "최근 임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창립 80주년의 의미를 담아서 성대하게 축하할 시점이지만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모든 게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룹 '맏형'격인 삼성전자는 물론 1938년 3월 설립된 모태기업 '삼성상회'의 후신인 삼성물산도 오는 22일 별도의 창립 기념 이벤트를 열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삼성 80년사를 되돌아보는 영상물을 제작,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계열사 임직원들이 일정기간 사회봉사 캠페인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나 역시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공식화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의 이런 소극적인 모습은 연일 계속되는 '악재'와 이에 따른 비판 여론 때문으로 여겨진다.
가뜩이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오랜 와병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일선 복귀 지연으로 '그룹 중심축'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의 수사와 조사가 이어지면서 '정경유착'의 부정적 이미지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말부터 재계와 '현장 소통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LG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을 차례로 찾았지만 재계 1위인 삼성 방문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특별히 순번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김 부총리의 다음 간담회는 중견·중소기업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삼성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삼성 내부에서는 '자성론'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정경유착이라는 고질적인 '비리 관행'에 연루됐던 것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입장인데다 그동안 '실적 지상주의'에 빠져 부정적인 여론을 바꾸는 노력도 게을리한 게 아니냐는 현실 인식인 셈이다.
이에 따라 전자계열사와 비(非)전자 제조 계열사, 금융 계열사 등 3개 소그룹을 대표하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그룹 이미지 개선 방안을 추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기존의 '실적이 이끄는 회사(Performance Driven Company)'에서 '가치가 이끄는 회사(Value Driven Company)'로 탈바꿈하자는 취지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이미지를 바꾸자고 우리가 떠들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지난 80년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또다른 80년을 생각하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삼성의 긍정적인 가치를 만들어 국민이 공감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