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1일,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육포럼이 한창인 가운데, 회장 바깥에서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천막을 치고 시위를 벌였다.
“교육부에서 알려주지 않는 현실입니다! 참고하세요.” 이들이 배포한 유인물에는 지난 교육의 성과를 자랑하는 포럼의 특별세션과 달리, 한국 교육이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의 활동가들은 정부가 청소년의 성에 대한 교육의무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정부의 교육부재였다.
활동가 희믄(16)씨는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부재한 상황에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정체성이 공개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가 이렇다는 편견이 박혀있고,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교육 받는 상황에서 옆에 있는 친구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아는 상황인 것이다. 거부감이 들면서 동시에 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운이 좋아 그런 경우가 없었지만, 청소년이 아우팅되거나 커밍아웃하는 상황에서 학교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폭력에는 가방이 칼로 찢어지는 것에서부터 성소수자 학생의 신체부위를 맞추면 점수를 매기는 “압정게임”까지 다양하다.
과거에 비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는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하고 “보편적 성의식”에서 벗어나는 이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당당히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서울지방 경찰청은 지난 30일,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문화축제’ 거리행진을 금지한다고 통고했다. 1일에는 보수 기독교 단체 5곳이 기자회견을 열고, 축제 자체를 아예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갤럽이 세계 123개국을 대상으로 “동성애자가 살기 좋은 나라는 어디인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69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 한가람 변호사는 “최근에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 반(反)성소수자들의 활동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어지고, 동성애/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면서 이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얘기가 퍼져나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다른 것들에 대한 배타성이 심한데,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하는 부분에서 좀 미흡한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면서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좀 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한 변호사는 이러한 시각이 학교 내에서도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들은 오히려 교사들이 혐오발언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우도 잦다면서, 학교 측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정도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희믄씨는 처음에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당시 이들이 자신을 “고치려고”했었다면서, 교회를 가서 목사와 상담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부모가 기독교인조차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랜 대화 끝에 자녀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일반적인 부모자식 간의 관계와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13살에 커밍아웃한 활동가 쥬리(21)씨는 자신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부모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연애나 성소수자로서 가지는 고민에 대해 애정을 갖거나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정은 하지만 얘기는 안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벼랑 끝에 몰린 청소년 중 상당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성소수자 학생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6%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58.5%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부산의 한 고등학생이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학교 측에서 진행한 검사에서 심한 우울증과 극심한 자살 충동, 불안 증세를 보였으나, 학교 측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위하지 않았다.
지난해 법원은 학교 측이 자살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국내 성소수자차별 반대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한 바 있다.
한가람 변호사는 이에 대해 “전형적인 사건”이라면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전체 학생에 비해 네다섯배 넘는 자살시도율을 보인다.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이 외부 기관에 접촉하거나 교육청에 문의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면서 “이 학생들을 괴롭히는 학생들이 문제인데도 이 학생이 문제인 것처럼 다뤘었던...결국 이런 것들이 이 학생을 자살로 몰고 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서울시교육청을 포함한 교육당국에서는 학생인권 조례를 통해 성소수자차별 문제에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성소수자차별을 반대하는 이들은 조례 자체가 강제성이 없고, 위반시에도 시정하라는 지시만 내려진다며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쥬리씨는 “(동성애 차별은) 일반적인 학교 폭력과 다른데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대처방안을) 개발하고 적용하고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한가람 변호사는 “다른 학생이 차별과 폭력을 행사할 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학교, 교육기관 및 정부부처에서 해당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성소수자 차별 폐지를 위한 현장의 움직임에도 정부 정책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효했으나 여기엔 동성애에 대한 교육이 배제되어 있어 논란이 생긴 바 있다.
교육부는 이에 “동성애 관련 언급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한 바 있으나, 표준안에 누락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쥬리씨는 “어쨌든 성교육 표준안에 따라서 교육하라는 건데, 내용이 없으면 하지 말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행보는 국제사회에서의 질타를 받고 있다.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는 최근 이에 대해 한국 정부를 지탄하고 표준안을 수정하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HRW 성소수자 권익 담당팀의 카일 나이트 연구관은 “(한국)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데 크게 놀랐다(alarmed)”면서 이 표준안은 한국이 인권보호에 대한 국제적인 의무를 지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이트 연구관은 “학생들이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해 정확하고 인권에 기반한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성 정체성에 대한 지식을 숨기는 것이 오해와 증오를 낳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한계와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 정책 수립 과정에서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좀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한편 미래의 대한 두려움 역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동성결혼은 합법화되지 않았으며, 부부 관련 복지 정책 역시 이성애자 위주로 되어 있다.
쥬리씨는 “어디에서도 내 삶의 모델을 찾기 어렵다. 주변에 이성애자의 삶뿐이라 어떤 삶을 살아갈까 고민할 때 참고할 여지가 거의 없다”면서 “내가 성소수자란 이유만으로 늘 이런 것을 신경 쓰며 살아가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언급했다.
(코리아헤럴드 윤민식 기자. minsikyoon@heraldcorp.com)